
프랭크 바움의 환상소설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중 첫 권이자 가장 유명한 버전의 원제는 [위대한 마법사 오즈 The Wonderful Wizard of Oz] 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들, 즉 도로시와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그리고 사자가 나온다.
돌아갈 곳을 그리워하는 도로시와
생각이 없는 허수아비
감정이 없는 양철나무꾼
용기가 없는 사자.
이들은 각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일행이 되어 길을 나선다.
저자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이 느끼는 결핍은 우울증의 증상과 상당히 비슷하다.
상실감, 슬픔 - 도로시
판단을 내리지 못함, 기억력, 집중력 저하 - 허수아비
감정이 무뎌짐, 흥미와 감동 저하 - 양철나무꾼
불안, 두려움 - 사자
이들이 맞닥뜨리는 길에는 수많은 위험과 함정, 수수께끼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상 또한 이다지도 위험하고 함정으로 가득하며 불확실하다.
도로시와 일행들은 역경에 맞서며 놀라운 면모를 보여준다.
뇌가 없어 생각을 할 줄 모른다는 허수아비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심장이 없다는 양철나무꾼은 개미 한 마리에게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린다.
겁쟁이 사자는 도로시가 위험에 처하자 용맹하게 달려든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일행들은 서로를 격려해준다.
("방금 너 정말 뇌가 있는 것 같았어!" 소설에서는 이렇게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의 결핍에만 주목했던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돕고 상대방이 가진 부정적인 자아상을 교정해주는 과정은 우울증의 집단치료 과정과 흡사해 보인다.
우울증의 집단치료에서, 우울증 환자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사연을 나누며 여러 가지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한다. 남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되는 '이타주의, 내가 남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 나만 힘든게 아니란 걸 깨닫는 '고립감의 해소', '공감' 등이다. 개개인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치료도 중요하지만, 집단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나오게 되는 이러한 치료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꼭 정형화된 집단 치료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서로를 동료로 삼으며 우울함을 치유해 보면 어떨까. 도로시의 일행들은 서로를 만나기 전까지 환상의 나라 오즈를 괴롭힘과 저주, 위협으로 가득한 세계로만 생각하였다. 서로를 만나 긴 여정을 떠나며, 오즈는 비로소 환상의 나라가 되었다. 비록 여전히 위험과 수수께끼는 존재했지만, 함께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고난과 시련이 아닌 모험과 도전이 되었다.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경험을 나누며, 자존감을 찾아줌으로써 시련 가득한 이 현실이 모험과 도전의 장으로 보이게 된다면 참 멋질 것이다.
